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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카페를 찾는 이유에 대해

커피에세이

by architect.j 2019. 6. 1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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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카페를 찾는다. 어떠한 마음으로 작은 카페를 찾을까. 정확하게는 어쩌다 그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되고야 마는 걸까. 인테리어가 좋아 보여서, 또 다른 내 단골집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리고 상당수는 이미 꽤 유명한 집이기는 하다. (휴우-)

 

Luft, 2017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잠깐이라도 기댈 그곳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누군가의 방해를 받고 싶지는 않으니까. 누군가는 모르는 나만의 것이어야 하는 이기심이 조금 더 크게 작용했으니까.

 

검색엔진에 걸려드는 수많은 맛집과 아기자기한 카페들. 언젠가 가봐야지 하고서는 어딘가에 스크랩을 한다. 그리고 잊는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의 입을 통해 그 이름이 나오게 되고, 나는 아차 싶었던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몇 번인가 있고 나서는 아예 저런 마음을 접어 버린 지 오래다. 아무렴 어때. 누군가는 그곳의 리뷰를 친절하고도 상세히 적어 놓았다. 거기에 나까지 보탬이 될 필요는 없으니까. 이제 그런 짓은 하질 않는다. 그저 내가 잊지 않기 위해 약간의 흔적은 남길뿐이다.

 

ALL THAT COFFEE, 2017

 

수도권이라는 삶의 반경이 이리 불편할 줄은 몰랐다. 마음만 먹으면 2시간 내외에 수도권 극과 극을 닿을 수 있다 보니까 너무나 많은 정보가 오고 간다. 혹자는 커피를 하면서 '그곳'도 안 가봤냐며 나에게 꾸지람을 던지기도 한다. 아니, 나라고 전부 다 아는 건 아니잖아요. '그럼 왜 우리 집 앞에 있는 카페엔 왜 한 번도 안 오셨어요?'라고 확 따져 물을까 하다 관둔다. 대체 그게 뭐라고.

 

그러다 보니 동네 카페, 동네 맛집, 동네 단골, 동네 술집, 동네 친구 등에 고개를 돌리게 된다. 이태원의 꼭 가봐야 할 맛집과 카페, 압구정의, 판교의, 강남의, 종로의, 북촌의, 홍대의, 마포의, 합정의, 상수의, 주말에, 애인과,......

 

최첨단의 유행을 따르기에 너무나 벅차다는 느낌이 든다. 숨을 헐떡이다 보니 그게 그거 같고 어떤 감동도 여흥도 오지 않는 피로한 일이 되어버렸다. 서로가 나서서 피로한 일들을 자랑하는 꼴이라니 너무 우습게 다가왔다.

 

118 Coffee, 2017

 

 

굳이 독서 습성을 밝히자면 나는 베스트셀러라던가 살아있는 작가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체로 이미 죽은 지 꽤나 오래된, 출판된 지 10년은 넘어가는 책들을 굽이굽이 살펴보고 뜯어보고 씹어본다. 처음엔 이러지 않았다. 베스트셀러의 목록을 매주 뒤져서 잔뜩 주문해서 읽고 후회하고, 읽고 후회하고. 그러다 도서관을 찾게 되고. 그러다 고전을 읽게 되고. 그러다 완전한 나만의 취향이 생겨버렸다. 살아있는 작가의 책은 읽지 않는다. 읽더라도 10년 가까이 - 보통 스테디셀러(steady seller)가 된 - 돌고도는 책들을 주로 찾는다. 그 정도면 됐다 싶은 거다. 그러면 평단과 독자의 인정을 받은 부류라는 말이다. 이거, 커피에도 적용하면 안 될까?

 

독서와 커피라니.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문득 이런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내 취향에 맞는 독서습관처럼, 내 취향에 맞는 커피를 찾아다녀보고 그것들을 즐긴다. 거기에 대체 어떤 편견과 참견이 있을 수 있을까. 물론 누군가의 지원으로 카페를 다니라면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는 없겠지만요.

 

그러다 보니 남들이 잘 안 가게 되는 곳이라거나, 자신만의 확신에 찬, 유행을 따르지 않는, 점점 나와 비슷한 부류의 카페나 커피를 찾게 되었다. 아, 이 정도라면 좋잖아.

 

118 Coffee, 2017

 

내가 자주 언급하는 코이케 류노스케라던가, 요즘 들어 많이 생각을 하는 미니멀리스트적인 관점. 이리저리 비교해보고 나와 부합되는 카페를 찾았다. 아, 여긴가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 본다. 물론 이렇게 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검색이라는 것을 해야만 한다. 적당히 분위기가 있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마저 내가 흥얼거리는 에디 히긴스. 됐다, 이쯤이면 좋아. 커피의 맛이 있건 없건, 나에겐 중요하지 않다. 과연 본인이 만든 커피에 대해 얼마나 나를 설득시킬 수 있을까. 자기 자랑이 아니라, 자신의 커피에 얼마나 나를 동기화시켜줄 것인가. 내가 커피를 표현하고 나의 커피에 사람을 초대함에 있어, 나는 이런 방법을 취하다 보니 나와 비슷한 방법을 견주는 사람에게 끌린다. 너와 나의 맛을 동기화시켜보자. 설령 다르더라도 말이다.

 

스위트 코리아 2017

 

 

꼭 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트립 어드바이저, 옐프, 그리고 수없이 많은 블로그 후기들. 전문가가 너무 많다. 이런 부분에서 또한 피로를 토로하고야 마는 것이다. 나와는 또 다른 부류거니와 하고 넘기기엔 너무나 많은 게 흠이지만.

 

그저 잠자코 시간이 지나길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뜨거운 열기도 언젠가는 한시름 식어빠지기 마련이겠지. 그런 후에 '진짜'들은 남아 있겠지. 시간에 있어서는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뜨거운 투지가 남아있다. 그게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무기이자 장점이 아닐까. 그때까지는 이렇게 관망 아닌 관망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적어도 이런 문제에 대해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을 자주자주 만나보려고 한다. 아직은 그리고 여전히 전문가라는 명함을 달고 다니기에는 한 없이 부끄럽다. 그저 보편적인 시각에서의, 가장 대중적인 시각에서의 입장을 대변하고자 한다. 일부의 매니악한 시장이 있겠지만 결국 팔리는 물건이 시장에 오래 남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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