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오래전, 그 날의 꿈이 있었다.
나는 어느 카페의 카운터에 고즈넉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그 날의 힘든 일과를 다시 되돌아보고는, 달달한 커피 한 잔으로 겨우 몸을 추스르고 또 다음 날을 기대하는 꿈 말이다. 조금 더 철이 없었던 시절에는 카페라기보다는 그 무대가 술집의 카운터, 바(bar)였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겠다.
글쎄, 계속해서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바(bar)라는 공간에 무척이나 큰 애착이 있나 보다. 무엇이든지 아주 가볍게 무게를 만들어 버리는 역설적인 무게 추랄까. 그 공간에서는 그 어떤 무거운 짐도 새의 깃털 마냥 아주 가벼워져서 나풀나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가 되어버릴 것 만 같다.
알코올이라는 물질이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이제는 몸이 알코올을 전부 받아내기에는 힘이 든다는 걸 '직접' 깨닫고 나서는 또 다른 대안의 바를 찾아 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그 바는 여러분도 알다시피 카페의 바, 그래 그거다!
바리스타와 바텐더. 우리는 이 둘에 대해서 과연 얼마만큼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저 주문을 받아 들어주는 사람? 이제는 그 마저도 값비싼 키오스크라던가, 사이렌-오더라는 것들로 대체되어 가고 사람이 할 일이 꽤나 많이 줄어들고 있다. 물론 그런 면에서 술집의 바는 여전히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불문율이 크게 자리를 잡고 있네?
2년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이다. 부산 모모스 커피를 저녁 느지막한 시간에 찾았었다. 출장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기 전, 잠깐 들른 카페였지만 그 날의 기억은 나에게 꽤나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커피가 맛이 없어서, 서비스가 불친절해서, 가 아니다! 그간 내 판타지 속에나 존재했던 바리스타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문장을 잘 살펴서 주의해서 읽어주세요!)
그들이 갖고 있던 커피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체계적인 교육을 통한 튼실한 기반 지식들. 하, 어찌 제가 그 기억을 쉬이 잊겠습니까. 으레 내가 어디를 가서 무슨 질문을 한다면 점장이나 매니저 그리고 사장님을 모셔온다고 하던데 (물론 이 날엔 센텀시티점 오픈 준비로 매니저는 부재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당시 6개월 남짓 된 바리스타는 자신의 커피에 대해, 모모스 커피의 철학에 대해 한참이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혹시라도 사장님이 보시게 되면 오해는 하지 않으시길. 저 역시 업장에 방해되지 않을 만큼 중간중간 질문을 하고 답을 받고 그랬습니다요.
놀라움 이면에는 과연 이런 곳이라면 내가 계속 오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혹여 내가 가지 못하더라도 부산을 가는 지인들에게는 늘 모모스 커피에 대한 내 경험을 장황하게 풀어놓았다. 지금도 그러고 있지 않은가? (물론 이제 이렇게 내가 이야기를 뿌려놓았으니 모모스 커피의 직원분들은 더욱 피곤해지겠죠? 미안합니다.)
바로 어제는 동네에서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화덕의 아침이라는 카페를 다녀왔다. 화덕을 이용해 직접 빵을 굽는 곳인데 몇 번인가 블로그, 페이스북에서 스쳐보고는 겨우겨우 짬을 내 찾았던 것이다. 점심을 앞둔 시간이라 막 새로운 빵이 나오고 있었고 모닝빵과 커피를 주문했을 때, 나는 두 잔의 아메리카노를 받게 되었다. 아마 이전의 나였다면 대체 이게 무어란 말인가 하고서 버럭버럭 화를 냈을 법도 한데 요즘은 그러질 않는다.
"한 잔은 서비스인가요?"
물론, 서비스가 아니라 미스 오더(miss order)였지만. 나는 흔쾌히 '그럼 두 잔 다 마시죠 뭘'하고서 양손에 모닝빵과 아메리카노 두 잔을 들고 싱글벙글 나왔더랬다. 모닝빵은 촉촉하고 따스하니 훌륭했다. 또 한 편으로는 미스 오더에 대한 응대, 나라면 어떻게 할까로 한참이나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직접 카페를 경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카페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 단순히 고객 응대라는 서비스 접점 부분을 어떻게 바라보고, 또 이해시킬지는 너무나 어려운 문제다. 나는 소비자로서 응당 받고 싶어 하는 서비스가 있다. 그러나 나도 그게 무언지를 설명 하지 못한다. 결국 고객도 고객이 무얼 원하는지 모른다는 난해한 문제로 빠져들고야 마는데.
불과 얼마 전, 스타벅스를 들렀던 일화도 꺼내볼까. 나는 '플랫 화이트'(분명 플랫 화이트라고 했다. 플랫 와-이트라고 하지 않았다.)를 주문했고, 바리스타는 그런 메뉴는 없다고 했다. 정확히는 그런 메뉴는 모른다고 했다. 나중에야 다른 음료를 주문해서 받아갈 적에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근데 혹시 플랫 화이트가 어떤 건가요?' 나름대로 친절한 미소만 남기고 나는 매장을 빠져나온 기억이 있다.
두 번째, 지난주에도 마찬가지로 스타벅스를 들을 일이 있었다.(왜 내가 스타벅스에 자주 가는지는 다음번 글에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슈크림 라떼 아이스'! 하지만 역시나 주문 실패였다. 바리스타와 나 사이에 벌어진 간극을 어떻게 메워나갈까. "그럼 다른 걸로 무얼 추천해주시겠어요?" 하고 물어보면 그녀가 얼마나 당황할지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나 할까. 그렇담 제가 정말로 어떻게 무얼 했는지 여러분은 이미 다 잘 알고 계시겠죠? 네, 이번에도 역시 그랬습니다.
반면에 개인 카페숍은 그런 면에서 커스텀과 대응이 빠르다. 바리스타 개인의 역량이 더욱 중시된다고 봐야 하나. 프랜차이즈가 정형화된 매뉴얼 속에서 속전속결을 의미한다면, 개인 카페는 자유분방함 속에서 개개인의 역량에 따른 대응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커피를 마시는 목적이나 의의가 '속전속결'에 있다면 내가 어디를 갈지, 그 외 다른 측면에 있다면 또 다른 '어디를 갈지' 여러분은 이제 감이 좀 오시렵니까?
내 입으로 그리고 손으로 이렇게 쓰기는 좀 그렇지만 올댓커피의 경우는 후자다. 후자이면서도 한 명 한 명이 능숙하게 훈련된 대응이다. 일부러 메뉴를 더 커스텀해보기도 하고, 알고 있으면서도 까탈한 주문을 할 때면 그래도 어쨌든 정확한 대응을 해주고 있다. 이 자리를 빌려 바리스타 여러분께 감사를......!
이 글도 '소통 없는 바리스타'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썼다 지웠다 몇 번을 고민하고 바꾸게 되었다. 거친 반론과 날 선 비판이 내게 날아오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현실적인 문제, 현장의 상황, 카페를 찾는 대다수의 고객이 실은 커피에 큰 관심이 없다는 아이러니한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찾는 이상향으로서의 바리스타를 주욱 늘어놓는다.
카페와 바리스타에 관한 자료를 찾다 보면 크나 큰 자괴감이 찾아온다. 때론 누군가 바리스타에 대해 쉬이 넘볼 수 있는 직장이자 조금은 편하게 생각해볼 직업으로 삼기 때문이다. 카페 사업장의 이야기나 인터뷰를 찾아보면 그들 역시 바리스타로 시작을 했을 텐데 어느 순간 '사장'의 마음이 되어 단가와 원가, 테이블 회전에 목숨을 걸며 최저시급에 급급하니까. 꾸준히 올라오는 구인공고, 매니저 급, 점장 급, 가족 같은 직원 모십니다. 연봉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게 아니니까 그만 두자. 그렇지만 어딘지 우리 스스로도 스스로에게 역설적인 것 같아 자괴감만 든다.
커피컨셉이 생각하는 바리스타로 시작되어 결국 우리가 원하는 바리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고민해본다. 단순히 이상적인 바리스타의 모습은 커피에 대해 해박한 지식, 자신만의 커피 레시피, 바 근무-운영 노하우 등이 포함되겠지.
예고편에 썼지만 본편에 담지 못하는 카페도 여럿 있다. 재방문을 하자 이전 같지 않았다던가, 내가 쓰려고 마음먹었던 부분과는 영 맞지 않는 방향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던가, 대체 이게 카페인지 셀프 바인지 모르겠다라던가. 최근의 트렌드야 하도 많으니까 말이다.
어찌 되었든 우리가 생각하는 바리스타는 내가 되고 싶은 바리스타의 모습이 아닌가. 그리고 나와 함께 할 바리스타가 이런 생각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랄까. 아주 멋진 봄날에 어느 날 갑작스럽게 만날 이상형을 그리듯 그런 바리스타를 떠올려 본다. 우선은 우리의 생각을 깨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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