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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커피 그리고 컨셉일까

커피에세이

by architect.j 2019. 6. 6.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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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집'

 

단골이라는 이름 하나로도 무엇을 하든지 자신감과 자부심이 넘치던 시기가 있었다. 때로는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지만 때로는 자격지심을 느끼기도 했다. 앞서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커피'라는 시장 속으로 쏘옥하고 빠져들어왔다. 그리고 수많은 나의 단골집들, 물론 대다수가 흩어져 버렸지만 술집이나 고깃집 그리고 짬을 내어 들르는 맛집들은 커피를 업으로 삼아감에 있어 여전히 그 자리에 빛나고 있었다.

 

커피플레이스, 경주 2016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단골 카페라고 할 만한 곳이 나에게 있지 않았던 순간에 말이다. 에스프레소가 뭔지도 모르던 시기를 지나, 하루에 에스프레소 몇 잔쯤이야 거뜬하게 마시게 된 지금까지도. 단골 카페, 단골 커피숍. 그 단어는 대체 무어라 정의할 수 있을까.

 

한 집 건너 또 한 집. 카페는 많다. 수 없이 많고 수 없이 사라지고. 그리고 다시 또 생겨나고. 그러다 보니 나는 으레 실수를 피하기 위해, 빠르고 간편하게, 일정한 맛의 수준을 음미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대형 프랜차이즈의 커피를 찾고 있었다. 심지어 그게 대형 햄버거 체인의 드라이브-쓰루(drive-thru)라 할 지라도 말이다! 실수를 피하기 위한 나의 선택이 다양한 모험심마저 축소시켜버리다니. 조금은 이쯤에서 슬픔을 느껴도 될 것 같다.

 

폴 바셋 한남 커피스테이션, 2016

이쯤이면 충분히 내 논조에 대해 반발이나 반박을 가할 테지. 그 수많은 스페셜티(specialty) 커피숍들은 대체 가보기는 한 거냐고. '그 소중한 모든 커피숍들이 힙스터 문화처럼 되지 않길 나는 간절히 기도한답니다.'

 

자고로 단골집이라 하면 우리 집 수저가 몇 개 인지, 어머님은 건강하신지, 굳이 내가 메뉴를 주문하지 않더라도 느긋하게 기다리다 못해 가게의 시그니처 메뉴를 덜컥 내 앞에 가져다주는 '센스'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 시그니처 메뉴의 가격이 얼만지, 나에게 시그니처 메뉴의 가격을 청구할지 안 할지, 주인이나 나나 서로 고민하지 않아야 함은 당연하다.

 

MOMOS COFFEE, 부산 2016

멋있고, 예쁘고, 잘난 커피숍은 참으로 많다. 커피머신계의 명품! 급수 시스템계의 No.1 청정 필터! 유럽 집시들로부터 직접 공수한 말도 안 되게 아기자기하고 세상 단 하나뿐인 도자기 그릇과 커피 잔들...... 하지만 가격은 핸드드립(hand-drip) 한 잔에 단 돈 15,000원. (여기서 손이 바르르 떨리면 아니되옵니다.)

 

커피 그리고 더욱 포괄적인 범위에서 '음료'라고 놓고 보았을 때, 비교대상을 술집으로 꼽아보았다. 단골 술집이라 함은 저녁을 먹고 나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때론 분위기를 잡기 위해 으레 찾는 술집 말이다. 전 세계에서 공수한 다양한 술, 보기만 해도 숨이 헐떡거리는 매끈하게 빠진 유리잔, 처음 한두 잔은 가볍게 그리고 점차 취할수록...... 가격은 '에라 모르겠다'. 다음 날인가 숙취로 정신을 차려보면 '어제도 실패구나'하고 한숨을 짓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꼭 누군가와 함께 다시 그곳을 찾고야 만다. 더욱 로맨틱하게, 어쩌면 딱딱하게.

굳이 커피와 술을 비교함이 무엇이냐라고 한다면 나에게 있어 커피와 술은 동등한 기호식품이기 때문이다. 커피도 술도 사람이 하루에 마실 수 있는 양은 대략적으로 상한선이 있다. 한 잔 당 가격이 책정되는 시스템도 비슷하고 바(bar)에서 일하는 사람, - 바리스타(Barista)와 바텐더(Bartender) - 이라는 단어에서도 그렇다.

폴 바셋 한남 커피스테이션, 2016

그런 나에게 있어 카페는 처음 만난 누군가와 함께 넘을 문턱 치고는 꽤 넘기 좋은 높이이기 때문에 더욱 애착이 가고 또 그런 애착이 가는 곳들을 많이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만 갔다. '카페나 가서 커피 한 잔 하실까요?' 그리고 '술집이나 가서 술이나 한 잔?'의 차이는 꽤 크지 않나?

 

단골 카페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이 일은 결국 '커피컨셉'(Coffee X Concept)이 되어버렸다. 나는 현재의 커피 소비자이자 미래의 카페 주인으로서, 어떠한 철학적인 접근 없이는 연일 뉴스에 보도되거나 매년 발행하는 경제 도감이나 국정감사 자료의 부정적인 쪽 수치로 잡혀서 은행 대출 빚을 갚기에 허덕이지 않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따끔하게 수치로 밝히자면, 2004년부터 2013년까지 총 10년간 창업한 자영업체가 948만 개라면 폐업한 자영업체는 792만 개라고 한다.  (2015 국정감사 자료, 오마이뉴스 기사) 거기에 덧붙여 폐업하는 자영업자 10명 중 4명이 음식점과 소매업이라고 하니, 여기 우리의 미래를 그리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는 사실이다.

 

(2015 국세청 국세통계연보, 연합뉴스, 허핑턴 포스트 기사) 아하, 서울에서의 카페 생존율이 3년이 채 안된다는 말을 빼먹었다. (서울시, 서울신용보증재단 - 2014 서울 자영업자 업종 지도)

 

유행하는 인테리어를 잔뜩 가져다 놓고, 알 수 없는 개념들을 뒤섞은 다음 포스트-모더니즘과 미니멀리즘, 또 큐비즘이라는 말까지 섞어가며, 남들이 라이트(light)하게 하니까 우린 0(zero)에 가깝게! 해서 라떼를 주문하면 에스프레소 샷 잔 따로, 살짝 뜨거운 물도 따로, 적당히 데운 우유도 따로 줘가며 '이게 우리의 철학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17

지속 가능한 커피 브랜딩. 이것이 핵심이다. 물론 지금도 각자의 지역과 영역에서 늘 수고하고 고생하는 카페의 주인분들이 계시지만 나로서는 카페 주인분이 건물주인지 아닌지부터 확인을 해야 이 카페가 내 단골집을 할 수 있을지 아닐지, 걱정이 앞서게 된다. 오지랖 좀 그만 떨라고?

 

나나 너나 우리만 즐거운 커피를 한다고 대체 무엇일랑 좋을까.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BC) 역대 수상자가 누구냐고 묻는 식상한 질문을 하지 않더라도, 지난해 대한민국 국가대표 바리스타 선발전, 최종 우승자가 누구냐라는 질문을 해도 일반인이나, 커피를 하는 사람이나 어지간해서는 미적지근한 반응이다. '그런 대회도 있어요? 그럼 그런 대회에서는 대체 무얼 겨루는 거죠?'라는 질문을 받지나 않았으면 말을 안 하겠다.

서울 카페쇼, 2016

결국 나는 모두가 즐거운 커피를 만들고 싶다. 에스프레소가 대체 무언지도 모르고 시작하여, 로스팅도 모르면서 원두를 떼다 팔고, 1,000원 한 잔 서로가 제살 깎기를 하는 바람에 고정 거래처를 잃어보기도 하면서 대체 어디서부터 갈피를 잡아야 할까 늘 고민했다. 최근의 커피는 정량적, 수치적으로 나아가며 더 이상 감성과 감각으로 치부하기에는 한 없이 '어려워'졌다. 요약하건대 온갖 변수를 다루는 과학, 그것이 커피 아닐까. 

 

거창한 듯 하지만 소박하게 그리고 앞서 밝힌 자영업자 폐업 데이터가 되지 않도록 꾸준히 나아가 보자.

 

이게 바로 커피컨셉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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